본문 바로가기

철학

플라톤의 눈으로 바라본 심신이원론

반응형

[고려대학교 철학과 김창래 교수님의 철학적 인간학을 수강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플라톤은 누구인가?

플라톤은 정신주의자, 이성주의자로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주목 해야하는 점은 다음 주장이 사실관계를 따지는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공존하고 감정의 파토스,이성의 로고스가 공존한다고 생각 하였으나, 당위로서의 심신 이원론이자 요청으로서의 정신주의인 것이다.
 
 

육체<<정신.   감정<<이성. 이것을 추구해야된다고 생각해!.

에로스의 관점에서

육체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영혼의 눈으로만 관조할 수 있는 정신적 아름다음을 향하여 가는 과정이다.
육체로부터 정신의 점진적인 분리, 해방,정제와 순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며 이는 후에 기술하겠지만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신관계에 대한 예비적 질문.

->몸과 마음은 실체이고, 구분된 실체인가?
일원론자(환원주의자)에는 물리주의, 정신주의가 존재
 
물리주의: 인간의 모든 정신적 현상은 물리학의 언어로 환원됨
정신주의: 정신만이 존재한다고 주장
 

데카르트의 주장

심신 이원론으로 순수 사유만을 본질로 가진 순수한 정신과 연장성을 자신의 본질로 가진 순수 물체가 존재함
두 유한 실체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함.
 
두 개의 분리된 유한 실체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물질적인 객관에 대해 주관이 사고하며 연결됨. 이는 근대적 인식의 본질임.
분리된 주객이 차후에 연결되는 인식론적 상황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임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주장함.
송과선은 뇌의 한 부분으로 마음과 몸(주객)이 접촉하는 창구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마음이 몸에서 접촉하는 순간 둘은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철학적 문제로서의 관계
 

외적 관계

헤겔은 일자와 타자들이 복잡하고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무관한 타자의 차후적 연결을 시도하는 것을 비판하였으며 이를 외적 반성이라 하였다.
 

희랍적 심신 관계

중간자 개념과 긴밀히 관련된 용어이다.
실제로 A,B는 서로로부터 구분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AB속에 분리되지 않은 채로 섞여 있다.
하나의 AB안에서는 추상화, 이상적 한계 이념을 통해 분리 해낼 수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실체는 하나이지만, 추상화를 통해 두 극단에 있는 물체와 정신을 이념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추상화는 AB가 A,B 두 측면을 모두 가진 이중적인 존재자로 중간자적 위치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A,B도 아닌 중간에 위치하며
이는 중간자로서 AB의 본질이다.
A와B 중 하나를 완전히 얻는 순간, 중간자로서의 본질을 잃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정리
관계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헤겔의 외적 관계
구분된 두 실체가 존재하며, 이후에 관계를 논할 수 있음.
희랍적 심신관계
중간자적 관계라고도 불림.
이중적인 본성을 지닌 중간자이며, 하나의 실체 안에 두 성질인 A,B를 모두 소유한 것이다. 
추상화를 통해 이상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면 A,B를 분리해낼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으며, 실제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실재적인 것은 중간자 뿐인 것이다. 
절대로 두 타자와 동일해질 수 있으면 동일해지는 것은 이상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순화주의

내세의 삶의 문제가 관심이 대상이 된 이후 혼의 의미가 구체화 되기 시작함.
이는 죄의식과 갈망의 문제의 결합이 논의 되기 시작해서 가능했음.
 
피타고라스의 영혼 윤회설.
사람의 혼은 불사적이며, 다른 육체에 깃드는 것.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내가 만들었다고.

하모니아의 문제.

피타고라스의 핵심 사상은 조화에 관한 것.
아페이론: 맹목적인 질료를 의미함
맹목적인 질료에 질서를 부여하는 코스므스를 통해 내적인 형상이 부여됨.
 
수와 음이 아름다운 것은 무규정적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코스마스 때문.
반복되는 영혼 윤회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코스모스의 질서에 대한 철학적 관조를 해야한다고 주장.
->외적 질료에 대한 외면, 내적 형상으로의 전환.
 

영혼과 육체, 그리고 죽음

철학은 죽는 연습이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철학이 완성된다.
죽음을 희랍적 심신관계로 바라보자.
인간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이상적 한계 개념을 지닌다. 
 
플라톤은 죽음을 통해 몸과 혼이 분리된다고 보았다.
죽음이라는 끝에 이르러야 비로소 몸의 방해에서 벗어나 혼의 눈으로 자유로이,
그리고 완전한 지식의 추구 및 사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추구하는 중간자이다.
희랍적 심신관계에 의하면 완전한 지혜를 얻으면 안되고 끊임 없이 추구를 해야한다.
철학, 혹은 지혜를 얻는 것은 완성될 수 없는 추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연습해야하는 이유이다.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의 관점을 선취하고, 몸으로부터 자유로운 혼의 상태를 이상적 한계 개념으로 사유하고 진정으로 스스로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끝의 관점에서 중간을 바라보라는 것은 절대적인 타자의 관점에서 몸의 방해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최대한 이상적인 혼의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을 최대한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봐,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현재 삶의 부정이고 이상적인 나를 향하기 위한 초월의 시도인 것이다.

지금의 너를 부정하고
네가 아직 아닌 그것으로 되어라!
심지어 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능 준비 할 때 이감, 시대, 상상,리트,피트 기출에서 지겹도록 본 심신이원론인데 철학과 전공 수업에서 깊이 있게 배우니  상당히 흥미롭군요. 자주 나오는 주제이니 수험생이신 분들은 한 번 읽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응형